패럴림픽 | 죽음의 문턱을 넘어 시작한 재활 운동,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다

많은 장애인들이 운동하기 여건을 개선하고 저를 보며 많은 장애인들이 사회에 진출할 힘을 얻었으면 좋겠고, 비장애인에게 편견 없이 장애인을 대할 수 있도록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의 Connecter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인해 얻은 장애에 좌절하지 않고 재활운동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찾고 편견을 해소하고 스포츠 전문가로서의 꿈을 키워나가는 전미경 마스터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김(플레이콕 김혜연 에디터) : 안녕하세요, 전미경 마스터님의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전(국가대표 장애인 사이클 선수 전미경) :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수영선수를 했으며, 런던패럴림픽 국가대표 출전, 14년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평영50m, 개인혼영150m 아시아신기록수립, 12년 Jimi Flowers Swim Classic(미국) 자유형, 배영, 평영50m 금메달 등 다수의 메달을 보유하고 있으며 2015년부터 현재까지 사이클 선수로서 17년 리우패럴림픽 국가대표 출전, 16년 벨기에세계선수권대회 개인도로독주 1위, 15년 스위스월드컵대회개인도로독주 1위 등 수영선수와 사이클 선수로 활약했으며 현재는 18년 2월 한국체육대학교 체육학과 스포츠심리학 전공 석사 졸업을 앞두고 있는 전미경 입니다.

김 : 장애인 국가대표로 엄청난 활약을 하셨는데요, 선수를 하게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전 : 저는 2004년 11월에 교통사고로 경추 5, 6번 골절과 함께 신경손상으로 장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재활을 하면서 시작 된 수영이 저를 2007년 2월 선수의 길로 자연스럽게 가게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중증장애인으로서의 도전,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중증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희망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사고가 나기 전에도 운동을 좋아하여 남편과 마라톤 대회도 출전하고 수영도 잘 하는 편이라 아마도 스포츠를 더 편하게 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 : 수영 선수로 세계에서 좋은 성적을 내며 활동하시다가 사이클 선수로 전향하셨는데요, 수영에서 사이클로 전향할 만큼 매력적인 종목이었나요?
전 : 사이클은 타 보게 되는 경험이 저를 사이클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문을 열게 했습니다. 수영의 실내 종목이라 경험하지 못한 느낌, 사이클을 타면 바람이 얼굴을 살짝살짝 터치하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사이클 감독의 나정도면 패럴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있다는 말이 더 유혹적으로 다가왔죠. 그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이클로 전향했습니다. 또 한가지 덧붙이자면 중증장애인 특히 저처럼 경수손상을 가지며 다리 뿐만 아니라 손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도 이렇게 액티브한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김 : 대한민국에서 운동선수로서의 삶도 쉽지 않은데, 장애인 국가대표는 더더욱 힘든 길이었을 것 같은데요. 선수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선수 생활을 하며 힘드신 점은 없으셨나요?
전 : 와 ~ 정말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다 표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하게되네요. 장애인선수는 먼저 스포츠등급을 가지게 됩니다. 장애인선수의 장애유형과 장애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장애인스포츠는 의무분류를 통해 선수의 장애상태를 그룹별로 분류하여 서로 비슷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선수끼리 경기를 치르게 합니다. 이것은 권투, 유도, 레슬링과 같은 체중의 차이로 인해 승패가 좌우 되는 것과 같이 장애인스포츠에서 공정한 시합을 위한 분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국제대회를 출전하려면 국제스포츠등급이 있어야 하지만 국내에서는 종목별로 다르지만 수영과 사이클에서는 의무분류사가 안타깝게도 없어요. 2009년 처음으로 국가대표로 선발되었지만 국제대회도 나가지 못하고 합숙훈련은 훈련원이 생기기 전이라 모텔에서 이용하며 불편을 감수 했었죠. 사실 국가대표가 되기까지는 열심히 훈련만 했기 때문에 별 어려움은 없었으나 행정적인 이슈로 인한 대회 출전 불가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국제대회의 경험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연맹만 기달릴 수 없다고 판단을 내려 개인적으로 2010년 캐나다 대회에 출전하기 하기로 마음먹고 준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해외를 가본적이 없는 제가 혼자서 캐나다를 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모할지 모르겠지만 국제등급이 없다면 앞으로 패럴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분명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이미 광저우아시안게임때 경험한 바가 있어서 더 이상 상처를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연맹의 도움없이 캐나다 주최측에 대회신청 하고 의무등급을 신청 하면서 준비해야 하는 서류들까지.. 또한 영어가 짧은 제가 호텔을 이용하기 위해, 대회장까지의 교통문제를 호텔에 문의 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는 지금 와서 생각하면 추억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무지 고통스러웠습니다. 경비도 만만하지 않았으니깐요…그래도 한국 출신선수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대회를 마치고 귀국 하였지만 그렇게 몇번을 더 2012년 런던패럴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국제대회를 혼자서 때로는 남편과 함께 다녔습니다.
사이클로 전향하고서는 제일 먼저 장비의 문제가 컸습니다. 장비가 고가인 것도 문제이지만 제가 한손을 아예 움직일 수가 없기 때문에 손잡이의 해결이 관건이었습니다. 장비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저는 외국 선수들이 사용하는 것을 추천해준 감독님 말에 장비를 맞췄으나, 제 손에 비해 너무나 큰 손잡이로 리우 패럴림픽까지 출전을 했습니다. 국내에서는 핸드사이클에 대한 이해도가 낮기 때문에 장비 제작에도 어려운 부분이 있었고, 국립재활병원 보장구실의 도움을 받아 일부분이 해결이 되었으나 아직도 장비 문제는 계속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김 : 해외에서는 패럴림픽 선수가 영웅이라고 하는데, 국내와 달리 해외 패럴림픽 선수들에 대한 관심은 어느정도 인가요?
전 : 아~ 정말 런던 패럴림픽때를 저는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수영장안을 꽉 메운 관중들을..그리고 선수촌을 나가면 바로 옆에 쇼핑몰이 있었는데 제가 스타가 된 줄 착각할 정도로 사인과 사진을 함께 찍자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때와 비교를 해면 너무 극과극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인천아시안게임때는 동원을 한 관중을 제외하고는 거의 관중석이 비어 있었습니다. 스포츠의 문제만은 아닐거에요. 제가 제일 힘들었던 부분이 사람의 시선이었으니깐요. 저는 북미나 유럽쪽으로 시합을 많이 다녔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별로 의식 되지 않을 만큼 편했어요. 혹시라도 눈이 마주치면 서로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어찌나 민망하게 쳐다보는지…그렇게 쳐다 보면 제가 “무슨 할얘기 있으세요” 물어보면 “아니요”하고 도망 가듯이 가는 사람들… 국내에서는 패럴림픽 선수로서의 모습보다도 장애인을 대하는 시선이 아직은 많이 차가운 것 같아요.

김 : 국내와 해외 선수들의 운영 및 관리 시스템의 차이가 큰가요?
전 : 런던패럴림픽에서 SB 5등급(평영)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독일 남자선수가 있습니다. 그 친구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은 독일에서는 선수들을 A, B, C 등급으로 나눠서 월급을 지급하고 우리나라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선수를 나누지 않고 같은 공간에서 훈련을 한다고 합니다.
오전에 가서 훈련하고 나가서 점심 먹고 다시 오후 훈련을 위하여 스포츠센타로 들어 왔다가 다시 퇴근하는 시스템. 그리고 그 친구 여자친구가 영국에 있어서 영국에 있는 팀에게 얘기 해서 영국선수들과 같이 훈련도 한다고 하더라고요. 나라 특성도 있겠지만, 활발한 국제교류와 함께 장애/비장애 구분없이 훈련을 할 수 있는게 가장 큰 차이점인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종목마다 훈련일수는 다르지만, 국가대표임에도 훈련일수가 100일 미만일 때도 많습니다.
또한, 장애인 선수의 경우 국가대표로 훈련 했을 때에만 훈련수당을 지급받을 수 있으며, 별도의 실업팀이나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곳이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개인이 훈련할 경우 개인 사비를 들여 훈련을 받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김 : 2018년 2월 1일 기준 올림픽 티켓 판매량은 79만 9000매(74.8%), 패럴림픽은 18만 3000매(83.2%)로 판매비중이 올림픽에 비해 높은 판매량을 달성하고 있는데요. 장애인 국가대표 선수로서 이번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에 기대하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전 : 저는 평창 동계 올림픽 덕분에 패럴림픽이라는 단어를 많이 듣게 되어서 너무 반갑고 기분이 좋습니다. 올림픽이 끝나고 보통 한달 뒤 패럴림픽이 열리지만 아는 사람은 장애인과 그와 관련 된 분야의 사람들이니깐요. 하지만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항상 같이 패럴림픽이란 단어를 언급합니다. 저는 그것만으로도 한단계 성공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에서 이제까지 동계선수들이 흘린 땀이 헛되지 않고 좋은 성적으로 스스로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동계든 하계선수든 우리는 같은 목적으로 스포츠를 하는 사람으로서, 국가대표로써의 자부심을 갖고 행복한 경기를 했으면 합니다.

김 : 마지막으로 전미경 마스터의 꿈, 스포츠 버킷리스트는 무엇인가요?
전 : 2012년 런던 패럴림픽을 앞두고 멘탈트레이닝을 받을 기회가 있었는데, 선수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받아들이는 일부 선수들이 약간의 거부감을 표출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수생활과 심리학을 전공을 바탕으로 장애인 선수들의 멘탈코치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국내에서 대부분의 매체에서 다루는 장애인의 모습은 대부분 개인적인 삶을 살기 힘든 모습으로만 보여지는데, 많은 장애인들이 운동하기 여건을 개선하고 저를 보며 많은 장애인들이 사회에 진출할 힘을 얻었으면 좋겠고, 비장애인에게 편견 없이 장애인을 대할 수 있도록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의 Connecter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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