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전통이자 역사인 문무양도, 알고 계신가요?

일본에서 스포츠가 교육의 관점에서 필수 요소 중 하나로 다뤄질 수 있는건 일본 교육이 지향하는 문무양도의 정신이 근본적인 이유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원래부터 문무양도 사상이 없던 것일까?

최근 우리의 양반은 학문만 증진하는 문화(글방에 앉아 글만 열심히 익히는)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兩班(양반) 중 兩은 둘을 의미하는 것으로, 문반과 무반을 합친 의미이다.
즉, 양반이라는 계층은 본래 문과 무 모두 도전할 자격을 갖춘 사회 계층을 의미하는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의 활약이 없었다면 우리의 운명 자체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의병은 도대체 산전수전 다 겪은 왜병을 상대로 이길 수 있었을까?
조헌, 고경명, 김천일, 곽재우 이들 4분의 선조들은 임진왜란 당시 호남을 사수하는데에 앞장서며 전세를 뒤집는데 크게 일조했던 의병장들로, 양반 출신, 즉 사대부 출신들이었다.
그나마 역사 사료 자체에서도 ‘그는 무예에서는 약했다’라고 나오는 고경명 의병장이 나온 그였지만 그를 묘사하는 그림을 살펴보면 말을 타고 등장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무예에 약했다는 고경명마저도 왜군들과 육박전을 펼쳤다.
조선시대 사대부, 양반 계급 대부분은 평소 칼을 휴대하고 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으며, 특히나 뼈대있는 사대부 집안일수록 집안 가보로 내려오는 칼 한자루씩은 보유하고 있었다.

이렇게 문무를 겸비한 지배신분 계층이 있었음에도 우리는 왜 역사를 제대로 보지 못한것일까?
과거 군사 정권에 협력했던 학자들은 양반의 모습을 단순히 글만 읽는 샌님으로 만들며 스스로 역사를 조작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스스로 무력에 의지한다는 콤플렉스가 심한 군사 정권이다 보니 되려 역사 속에서는 무의 존재를 지워버려야 했으며, 전형적인 무신의 존재를 부각시킬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일본이 존경하는 무사도 정신을 능가하는 위인들이 얼마든지 있으나, 우리는 스스로 이를 알려고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국내에선 조선은 왕권 중심의 국가이기 때문에 근대화를 주도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조선의 무도를 말하는 이들 역시 왕권을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군대나 다름없었던 관군의 군사력으로 말하고 있다. 이는 ‘당시 관군은 활을 더 중시하느라 검술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일본도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라는 결론이 도출되곤 한다.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들이 사용하던 검은 관군의 검과 매우 달랐으며 심지어 매우 뛰어난 검술을 지니고 있었고 조선에서도 일본의 무사도와 버금가는 무도 문화가 존재했었다는걸 추측할 수 있지만 사학계에서는 이에 대한 관심조차 갖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의 무사 계급은 본래 지방 권력들의 시중을 드는 하천한 계급이었으나, 오랜 내전을 통해 이들은 점차 필수 인력으로 부각되었고, 일반 평민들과 귀족 계급의 사이의 사회계급으로 올라섰다.
또한, 그들은 스스로 자각하고 학문과 무술 모두를 배우며 성장했고, 그들의 학문이 조선을 건너온 것이라는걸 알게된 이들은 이를 숭상하여 임진왜란 당시 조선으로 귀화하여 조선을 위해 싸우기도 했다. (영화 명량 준사라는 인물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역사에서 선비는 시골 글방에서 앉아서 책만보는 것이 아닌 학문과 무예를 같이 익히고 가르치는 문화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실제 고려의 문화가 조선의 문화로 이어졌는지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각 지방에는 학교의 역할, 즉 무에와 학문을 가르치던 중심은 그 어느지역을 가나 존재했던 사원(절)이었다.
억불 정책을 모토로 삼아 건국된 조선시대에는 그 자리를 유교로 대신하도록 했고, 그리하여 전국 곳곳에 설립된 곳이 우리가 흔히 서당으로 알고 있는 사립 교육기관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역사 속에선 문무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우리네 학자들은 군사 정권과 타협을 하고, 강력한 중앙 집권형 권력이 마치 선에 가까운 것이라고 국민을 세뇌시켜야 했고 이에 타협한 역사 학계에서는 오직 왕권 중심의 중앙 집권형 역사만을 국민들에게 보여줬던 것이다.
흔히 조선을 왕권 중심의 국가라고 비유하지만, 실제 조선의 26명의 왕들 중 왕권 중심을 이끈 왕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세종대왕을 살펴보면 아버지가 피로 만들고 물려준 왕권의 혜택을 크게 입긴 했지만 그를 기반으로 신권을 누구보다 존중한 대왕이었다. 심지어 그는 앞서 언급한 서당 문화를 정착 시키고자 상까지 내리곤 했었다.
일본의 무사 계급도 원래는 일본 개항을 반대했으며, 존왕양이파(왕을 올리고 서양을 배척한다)의 중심이 되어 칼을 들고 항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현실을 깨달았고, 지금도 일본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위인 사마모토 료마처럼 칼을 버리고 근대화에 앞장서는 무사들이 늘어나면서 이는 일본 무사 계급의 철학과 조선의 지방 유림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스포츠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S.C ALIVE 그룹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플레이콕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